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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지

[가족 여행지 관광] 명지원 [가족 여행지 관광] 명지원 고서면에서 고서사거리를 지나 광주댐으로 올라가다 좌회전하면 고읍리 덕촌마을. 그곳에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전통식당 간판이 보이는 길목으로 들어서면 된다.) 바로 예술의 마을 “명지원” 방문객들에게는 이곳이 경치 좋고, 잠시 들릴 수 있는 운치 좋은 까페라 생각하기 쉽지만 명지원은 이미 예술인들에게 좋은 무대요, 솜씨를 뽐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명지원에 들어서면 작지만 예사롭지 않은 야외무대가 눈에 띈다. 잔디광장에 대나무를 배경으로 한 무대라서 그런지 계절에 따라 매번 새로움을 던져준다. 명지원에는 갤러리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즐길 거리와 볼거리, 전통차와 소박한 한정식을 접할 수 있는 전통한옥의 공간에 먹거리도 있다. 이미 수차례의 공연과 .. 더보기
[체험형 관광] 송학랜드 [체험형 관광] 송학랜드 송학랜드는 박물관, 영상소품센터, 식당, 숙박시설이 한곳에 모여 있는 대규모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박물관에는 김종욱 관장이 30여년간 수집해온 우리 고유의 민속품과 성(性)유물 이외에 근현대의 생활사가 재현된 포토 공간으로 1관 "영상소품&7080"과 2관 "성(性)러브(love)"로 구성되어 있고, 박물관 외부에는 야외 놀이공간과 숙박 공간, 담양의 대표 음식들을 드실 수 있는 한식당이 마련되어 한곳에서 모든 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있는 입니다. 테마 박물관1관 “영상소품&7080" 김종욱 관장이 각종 영화 및 드라마 사극에 제작 납품하였던 영상소품과 70~80년대 생활사가 전시 재현된 포토 공간 2관 “성(性)러브” 김종욱 관장이 고미술품업을 하면서 30여년 동안 수집해 온 성.. 더보기
[가족 체험형 관광] 담양군 한국가사문학관 [가족 체험형 관광] 담양군 한국가사문학관 상세설명 전라남도 북쪽에 위치한 담양은 기름진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존·전승해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정신을 이어받은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은 불합리하고 모순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며 낙남(落南)하여, 이곳 담양 일원에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빼어난 자연경관을 벗 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였다. 이들은 수신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는 충성하고, 국난이 있을 때에는 분연히 일어나 구국에도 앞장섰다. 조선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국문으로 시를 제작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웠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 더보기
[담양 문화재] 개선사지석등(開仙寺址石燈) [담양 문화재] 개선사지석등(開仙寺址石燈) 지정별 : 보물 제111호 규모 : 총높이 3.5m(1기) 시대 : 통일신라(868년)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 전남 담양군 남면 학선리 593 상세설명일제시대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報)』에는 간주석 부분까지 묻힌 채로 있었으나 1965년에 주변을 정리하고 이를 노출시켰다고 한다. 1960년에 간행된 『국보도록(國寶圖錄)』에는 이미 지대석 부근까지 드러나 있고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문화재관리국의 고증을 받아 지대석과 하대석, 간주석 일부를 새로운 석재로 교체하는 복원공사를 하였다. 팔각형을 기본으로 삼는 고복형(鼓複形) 석등으로 높이는 3.5m이다. 세부양식을 살펴보면 넓은 방형(方形) 지대석(地臺石) 위에 팔각하대석(八角下.. 더보기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⑤근대이후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⑤근대이후 담양(潭陽)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담양도호부조(潭陽都護府條)에 이르면, 「본래 백제(百濟)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는데 신라때 추성군(秋成郡)이라 바꾸었고, 고려 성종 14년(995)에 담주도단련사(潭洲都團鍊使)를 두었다가 후일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어 나주에 복속하게 되었다. 명종 2년(1172)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공양왕 3년(1391)에 율원현(栗原縣)을 겸임케 하였다. 본조(朝鮮)에 들어와 태조 4년(1395)에 국사(國師) 조구(祖丘)의 고향이라 하여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공정왕(정종) 즉위 1년(1398)에 왕비 김씨의 고향이라 하여 부(府)로 승격시키었다가 태종 13.. 더보기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④조선시대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④조선시대 대나무의 고장이며 여행자들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은 담양!! 조선시대에 담양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참조글 2011/10/25 - [문화여행/역사] -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①선사시대 2011/10/26 - [문화여행/역사] -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②남북국시대(통일신라) 2011/10/27 - [문화여행/역사] -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③고려시대 왕의 눈물!! 태조가 통치하던 조선 개국시기엔? 우선 태조 4년(1395) 담양이 국사(國師) 조구(祖丘)의 고향이라 하여 감무관(監務官)을 지군사(知郡事)로 승격시키는 조치가 취해지고, 1399년 공정왕(정종)비 김씨의 외향(外鄕)이라.. 더보기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③고려시대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③고려시대 대나무의 고장이며 여행자들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은 담양!! 고려시대에 접어들며 처음으로 '담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참조글 2011/10/25 - [문화여행/역사] -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①선사시대 2011/10/26 - [문화여행/역사] -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②남북국시대(통일신라) 드디어 담양이란 이름이 생기다 담양(潭陽)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담양도호부조(潭陽都護府條)에 이르면, 「본래 백제(百濟)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는데 신라때 추성군(秋成郡)이라 바꾸었고, 고려 성종 14년(995)에 담주도단련사(潭洲都團鍊使)를 두.. 더보기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②남북국시대(통일신라)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②남북국시대(통일신라) 대나무의 고장이며 여행자들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은 담양!!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담양의 역사는 삼국시대를 건너 남북국시대로 접어듭니다. 천년왕조를 이어가는 통일신라의 통치 아래 있던 담양. 과연 이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참조글 2011/10/25 - [문화여행/역사] -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①선사시대 당(唐)나라에 의한 지방제도의 개편 신라가 지방제도 체제를 정비하기 전에 당(唐)에 의한 지방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진다. 즉 당은 백제의 옛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설치하고 7주 51현을 설치하였다는 것인데 담양지역과 관계가 되는 것은 분차주(分嵯州)이다. 분차주(分嵯州)의 속현(屬縣)인 고서현(古西縣)은 옛 .. 더보기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①선사시대 [담양역사] 담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①선사시대 대나무의 고장이며 여행자들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은 담양!! 그 역사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담양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선사시대 2001년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대덕면 매산리와 월산면 광암리 지역에서 구석기(舊石器)시대의 유물인 뗀석기 등이 발견되어 상당히 오래전부터 우리 지역에서 사람이 살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 유적인 고인돌은 대전면 72기·무정면 82기 등 모두 240여기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이들 지역에 정치적 사회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봉산면 제월리(齊月里)에는 석촉·석검·저석(숫돌)·석부(石斧) 등 유물이 출토된 바 있고, 무정면 강쟁리(현 담양읍)에서는 석검과 석부가, 담양읍 .. 더보기
[담양 문화재] 담양읍오층석탑(潭陽邑五層石塔) [담양 문화재] 담양읍오층석탑(潭陽邑五層石塔) 지정별 : 보물 제506호 규모 : 총고 7m(1기) 시대 : 고려시대 지정일 : 1969년 6월 16일 소재지 : 전남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 342 상세설명 담양읍에서 순창으로 향한 도로를 따라 1km쯤 올라가다 보면 평지가 전개되는데, 광활한 지역에 경영된 가람(伽藍)으로 짐작된 들 가운데에 절터의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고 다만 이 오층석탑만 남아 있다. 탑의 형태는 1층 기단에 오층석탑으로 일반형과 약간 다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부 지대석은 1석으로 구성하였고 중석은 중앙에 탱주가 생략된 채 4개의 모서리 기둥이 배치되었는데 특히 기단부 높이가 다른 오층석탑에 비해 매우 낮게 조성되었음이 특이하다. 기단부 갑석은 아주 경미한 경사를 보였고 약간 .. 더보기